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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 한 줄의 건축이야기] #44-국내 최고 목조건물 봉정사 극락전 엉터리 복원됐다
관리자 (brand21) 조회수:196 추천수:1 183.107.123.3
2019-04-10 13:15:00

[Moon'S 한 줄의 건축이야기]#44-국내 최고 목조건물 봉정사 극락전 엉터리 복원됐다

 

“진짜 대박 부끄러운 엉터리 건물 : 국내 최고 목조건물 봉정사 극락전 "

 

이거 누가 했어~

진짜 대충 새걸로 만들어 놨네요. 안타깝네요. ㅠ.ㅠ

[Tip]

건축사학계 권위자 주남철 교수
“1972년 고증없이 해체복원하며
띠살창호·툇마루·단청 등 5가지
원형도 모른채 중국풍으로 복원”

민족문화 우수성 강조한 유신시절
학계 논의없이 무리한 공사 탓 지적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유명한 경북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국민문화재’로 부각된 건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한 1972년이었다.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문화재 복원이 정부 정책으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해방 뒤 처음 우리 기술로 옛 건축물을 해체 복원하겠다고 지목한 대상이 바로 극락전이었다. 더욱이 공사중 극락전 지붕에서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 건물을 수리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면서 국내 최고의 12세기 고려 건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봉정사 극락전은 그 뒤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 ‘고려시대 건물의 대표작’이란 수식어와 함께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그런데 정작 학계에서는 1975년 복원이 끝난 뒤 두고두고 극락전을 입길에 올리게 된다. 극락전 정면이 중국 건축풍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전면의 띠살창호문짝과 툇마루가 사라지고 당나라 풍의 살창(격자창)과 널문(판문)이 대신 들어선 모습에 학자들은 경악했다. 중국풍에 가까운 변형이 과연 본래 모습일까. 고증은 충실히 한 것일까. 게다가 복원 보고서는 공사 종료 17년이 지난 1992년에 나왔지만, 명확한 고증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수군거림은 커졌지만, 공식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봉정사를 민족건축의 대명사로 추어올린 당시 정권 아래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복원 40돌을 앞두고 극락전의 고증 복원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첫 논문이 나왔다. 저자는 이는 국내 건축사학계의 권위자로 당시 공사를 지켜봤던 주남철(75) 고려대 명예교수다. 그는 최근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28권에 실은 ‘한국 현존 최고의 목조건축 봉정사 극락전 본형(本形)에 관한 연구’라는 글에서 70년대 극락전이 명백한 고증 근거 없이 중국 최고의 목조건물인 산시성 남선사 대전의 모습으로 복원됐으며, 이후 두 차례 나온 수리복원 실측 보고서는 60년대 극락전의 본래 모습을 묻고 70년대 작위적으로 복원한 모습을 원형처럼 고착시켰다고 비판했다.

 

주 교수는 극락전에서 잘못 복원된 부분을 5가지 요소로 집약했다. 정면의 띠살창호와 전면 툇마루, 내부 우물마루, 동서쪽 측면의 창호와 바람을 막는 풍판, 단청이 그것인데, 이런 건물의 부분 요소들이 고려시대 원형인지, 후대 변형된 것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모두 제거해버려 원형을 더욱 알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풍판이나 정면 띠살창은 함께 맞물린 여러 부재들의 흔적이나 접합된 결구 상태 등으로 미뤄 12~13세기 절의 원형을 간직했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해체 복원을 강행한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견해다. 주 교수는 “17년 만에 나온 보고서조차 남선사 대전과 일부 구조상의 비교만 했을 뿐, 고증 근거를 밝히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며 “기존의 복원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2000년대 진행된 봉정사 대웅전 복원 공사에서도 툇마루와 띠살창호를 없애는 등 왜곡된 복원 내용을 본형으로 굳히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고려시대 건축물의 전형에 대해 국내에 공인된 전범이 없다는 데서 비롯한다. 현전하는 고려시대 건물은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부석사 무량수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건물들도 각기 기둥이나 기둥과 상부 지붕을 이어주는 공포부재 등의 세부 양식과 목구조가 달라, 극락전의 온전한 원형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확고한 원형을 구할 수 없는 한, 극락전 정면을 통째로 바꾸는 복원은 피하고 최대한 시간을 두고 신중한 학술적 논의를 거쳐 원형의 실체를 규명했어야 한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건축사가인 김봉렬(55)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극락전 복원은 박정희 통치시대의 강압적 분위기에서 국내 최고 건축물이란 명분만 내세워 무리하게 중국 건축물 위주로 원형을 창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며 “당시 공사 상황에 대한 세밀한 추적을 통해 무리한 복원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극락전 원형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모으기 위한 학계 차원의 재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70년대 복원 공사 실무를 맡았던 김동현(77) 전 문화재위원은 “띠살창, 풍판 등은 고려시대 건축 요소가 아닌 것으로 조사돼 제거한 것이며, 당시 전문가도 별로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해결책이었다”며 “재복원 등에 대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논의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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